밀리터리2017. 7. 27. 07:00


동구권의 중심인 러시아(구 소련)와 서방의 미국이 극한의 대립을 하던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립으로 공산권의 국가인 중국공산당과 소련은 절대적인 우방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산권의 중심은 소련이었고 소련의 권력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이 공산권의 중심으로 나서면서 모택동과 함께 화해무드가 조성되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대립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흔들리던 청나라의 만주지역과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 제국이 차지했고 숨겨진 감정이 싹텄습니다.


러시아가 볼셰비키혁명으로 혼란했던 시기에는 중국과 영토에 대한 분쟁이 없었지만 모택동이 국민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기 전까지 서로의 감정은 남달랐습니다. 공산화된 중국이 소련을 도와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관계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정치권의 허울이었습니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서방을 견제하기 위해 꽤나 우호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우수리강 일대에서 벌어진 국경 분쟁에서 소련은 중국에 핵이 없다는 명분을 들어 핵전쟁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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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에서 바라볼 때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보였지만 국경이 맞닿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고 소련은 기본적으로 중국을 무시했습니다.





니키타 세르계에비치 흐루시초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스탈린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모택동과 우호관계를 청산했습니다. 독재자인 스탈린의 인기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흐루시초프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이후 두 국가의 사이는 급격하게 냉각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흐루시초프가 핵탄두를 장착한 R-7 세묘르카와 스푸트니크 위성시리즈를 개발하면서 미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고 미국이 ICBM(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 탄도미사일) 미니트맨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핵미사일시대로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소련과 중국의 벌어진 틈 사이를 파고든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냉전시대 공산권의 세력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표면으로 숨겨졌던 소련과 중국의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왔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은 대부분의 무기를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았고 수호이 Su-27이 혁신적인 전투기로 이름을 올렸을 때도 소련은 별다른 의심없이 무기를 지원했습니다. 중국에게 조용히 약속한 것은 Su-27의 핵심 부품을 무단으로 카피하지 말라는 조건 뿐이었습니다.


정당한 자금을 지불하면 기술 이전까지도 약속했지만 중국은 소련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Su-27의 중국판 카피 선양 J-11을 개발하게 됩니다. 기술력이 탐났던 중국은 부품을 무단으로 해체하였고 소련은 라이센스 생산분의 부품을 중단했습니다.





중국은 불량 부품을 인도했기 때문에 도입을 거부했다고 발표했고 무기 공급을 도맡았던 소련은 중국과 관계를 청산하게 됩니다. 선양 J-11을 기필코 완성한 중국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안좋은 분위기가 형성된 현재의 중국과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헤게모니를 나누며 미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내심은 절대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중국 시진핑이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는 있지만 양국이 이해관계의 접점이 맞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 정세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러시아와 중국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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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