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7. 21. 07:00


넓은 대륙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답게 미국은 육군 항공대 시절부터 전략폭격기에 대한 신뢰가 높았습니다. 독일이 가벼운 전투기 메서슈미트 Bf 109로 수많은 에이스를 탄생시키는 '전격전' 을 전면으로 내세웠들 시기에도 오롯이 '전략폭격기' 를 외쳤습니다.


2차대전 유럽 전장에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독일 본토에 전술적인 폭격을 계획했으며 영국 공군과 함께 전술을 수행할 폭격기를 요구했습니다.





원거리 이동이 가능하며 높은 수준의 폭장량을 원했던 육군 항공대의 바램을 이뤄 준 것은 "B-17 플라잉 포트리스"입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안기며 단숨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B-29 슈퍼 포트리스' 였지만 2차대전 중 가장 많은 폭격 임무를 수행한 것은 'B-17' 이었습니다.





최대 이륙중량 60톤의 B-29에 비해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30톤의 이륙중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항공모함에서 출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 확실히 효율적이었습니다.


엔진 4기를 가진 전폭기는 기동력을 가질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야간 폭격 뿐 아니라 주간 폭격까지 참여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를 앞당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메서슈미트 Bf 109



12,731대가 생산될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고 유려한 곡선을 가진 기체는 공기저항을 적게 받았고 당시로서는 잘생긴 폭격기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독일 영공에 들어서게 되면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들의 저항이 워낙에 거셌기 때문에 고공 침투를 할 수 있는 전폭기가 요구되었습니다. 높은 고도에서는 산소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에 과급기가 필요했고 터보차저가 엔진에 장착됩니다.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



"하늘의 포병사단" 으로 불리운 B-17의 단단하고 완성도 높은 기체는 주요 부위가 방탄으로 둘러져 있어 피탄되는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후기에는 P-51 머스탱과 영국에서 함께 출격하여 호휘하는 전술로 발전했기에 피탄율은 더욱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랭커스터 폭격기와 함께 독일 본토에 투하한 폭탄의 양은 10만 톤을 넘었고 태평양 전쟁에서 B-29 슈퍼 포트리스가 투하한 17만 톤에 비해 3배 정도가 많았습니다. B-17 혼자서 투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공을 돌릴 수는 없지만 독일 공습의 주체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초 생산은 보잉에서 시작했지만 맥도넬 더글라스와 폭히드 산하 베가 에어크래프트에서도 일부 생산을 맡았습니다. 후기형인 G형에 들어서는 13정의 12.7mm M2 브라우닝을 장착하게 되어 호위기 없이도 독자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1943년 이후로는 'B-24 리버레이터' 가 후속 기종으로 임무을 부여 받으면서 B-17은 서서히 퇴역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미 공군이 폭격기 만능주의에 빠지게 한 것은 'B-17 플라잉 포트리스' 의 맹활약이 여전히 전설로 기억되어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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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