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7. 12. 06:00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서부전선의 상황은 연합군에서 급격하게 돌아섰고 독일은 패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비관적인 여론이 나돌던 육군 장성들과는 달리 나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여전히 반전의 기회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프랑스 침공 낫질작전에서 좋은 루트가 되었던 벨기에 아르덴 지역을 기반으로 거점을 확보하려는 히틀러의 작전은 야전사령관에게 하달되었고 병력은 급하게 벨기에로 향합니다.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아르덴 지역을 안전하게 생각했고 대반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발터 모델





히틀러는 아르덴 대공세(벌지 전투)에 사활을 걸었던 지라 가장 신뢰하는 지휘관을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암살사건으로 육군 수뇌부가 흔들리고 있기도 했지만 방어전에 명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발터 모델 원수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막아낸 히틀러의 소방수 모델 원수의 지략으로 기울었던 독일군은 잠시나마 승전을 기록하게 되고 대공세의 성공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무리한 요구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모델의 견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최신예 보병 무기





독일 보병은 이전에 사용하던 마우저 Kar98k 소총과 MP40을 버리고 돌격소총 Stg 44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5발에 볼트액션 방식인 마우저는 빠른 사격이 어려웠고 MP40는 9mm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이었기 때문에 대인저지력이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현대 돌격소총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Stg 44의 위력은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을 압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전선은 독일군의 흐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히틀러의 전기톱 MG 42가 노르망디의 악몽이라고 하면 Stg 44는 악몽의 재현입니다.




미군 전투화





아르센 대공세가 벌어지던 1944년 12월부터 1월까지의 기간은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방한용품이 지급되기는 했지만 미군이 착용하고 있는 전투화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보병들에게 참호족을 일으키며 전투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가죽의 내피를 외부로 설계한 덕에 습기의 흡수가 독일군 전투화보다 빨랐고 습해진 발이 얼어 동상을 일으키게 되어 발가락이 절단되는 병사들가 속출했습니다. 아르덴 대공세에서 사상자로 기록된 많은 수의 미군은 전투가 아닌 참호족으로 인한 피해였습니다.




타이거 전차





아르덴 대공세를 위해 투입된 독일군의 신형 6호 전차는 타이거로 불리웠고 연합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타어거 전차는 중전차로서 100mm에 달하는 전면 장갑을 채용하여 대전차포에 대한 대응이 압도적이었고 높은 속도와 88mm 포로 무장을 했습니다.


미군의 셔먼 전차와 조우하기라고 하면 타이거 전차는 마치 워게임을 하듯이 미군 기갑 전력을 농락하였고 벌지 전투 초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바추카포와 성형폭탄이 없었다면 미군은 압도적인 독일 기갑 전력에 밀려 아르덴 대공세에서 패전했을 것입니다.




교란 작전





SS 친위대 소속의 오토 슈코르체니 중령은 공수부대 팔슈름야거와 함께 미군 후방에 침투하여 교란 작전을 펼칠 것을 계획하게 됩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병사들로 구성된 독일군은 미군 군복을 입고 미군 장비를 사용하여 미군들 사이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뇌획한 셔먼 전차로 구성된 독일군 기갑부대까지 참여한 교란 작전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바스토뉴로 향하는 이정표를 바꿔 미군과 연합군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고 주요 부대를 타격하여 대응 작전에 뒤쳐지기게 하면서 승기를 만드는 데 공헌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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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