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6. 21. 07:00


지리하고 참혹한 참호전을 펼친 1차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참호를 탈피할 방법으로 전차가 등장했습니다. 최초의 전차는 영국의 마크시리즈였고 프랑스 육군의 르노 전차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현대 전차의 원형을 갖추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패전으로 금수조치에 처해지기는 했지만 전격전을 창시한 전차전의 귀재 하인츠 구데리안과 에리히 폰 만슈타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와 같은 우수한 장성들이 가득했습니다. 소형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를 주력으로 펼치는 전격전은 유럽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반슬라브주의에 따라 감행한 소련 침공작전 "바르바로사" 가 전개되었고 날로 강력해지는 소련의 붉은 군대의 저력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배려가 전혀 없는 T-34 전차의 등장으로 명성을 높이던 전격전도 퇴색하였고 중전차의 필요를 요구하게 됩니다.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타이거가 동부전선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지만 히틀러는 타이거보다 강력한 전차를 원했고 타이거 2로 명명된 "쾨니히스 티거(Konigs tiger, 킹 타이거)" 가 등장하게 됩니다.


헨쉘사가 제작한 차체는 구동방식과 장갑에서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제안한 방식보다 우수했고 타이거의 뒤를 이어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소련의 개량형 전차 스탈린의 122mm 주포를 앞서는 71구경장 88mm포는 당대 최고의 화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루프가 설계한 상부탑에 장착된 주포의 위용은 모습만으로도 주눅을 들게 하였고 성능에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150mm의 상부 경사장갑은 연합군이 보유한 M26 퍼싱, M4 셔먼, M36 잭슨 전차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소련의 스탈린 전차 정도가 맞상대였습니다.


킹 타이거 전차의 출연은 타이거 전차로 경색된 연합군의 공포를 극에 달하게 하였고 기갑부대 에이스들의 활약과 함께 인지도가 급부상하게 됩니다. 타이거 전차의 위용으로도 연합군 기갑부대가 줄행랑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킹 타이거의 출연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결과를 보여주게 됩니다.





서부전선에 나선 킹 타이거는 연합군 전차를 무참히 망가뜨렸고 아르센 대공세에서 보여준 근성 있는 모습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만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와 히틀러의 소방수 발터 모델 원수 육군 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은 반대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타이거 전차보다 13톤이나 무거워진 중전차임에도 엔진은 기존의 마이바흐 V-12기통 700마력이었기 때문에 출력이 부족했고 연비도 좋지 않았습니다. 석탄 액화기술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유전지역을 빼앗기 독일에게 킹 타이거의 존재는 확실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장갑을 증대시켜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해 높아진 비용은 타이거의 2.5배였고 소련의 MBT(Main Battle Tank, 주력전차) T-34의 10배에 달했습니다. 킹 타이거는 높아진 비용과 부족한 자원 덕분에 500대에도 안되는 숫자가 제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력한 전차로 연합군의 기갑전력을 무력화시키려던 히틀러의 오판은 패망을 앞당겼고 킹 타이거의 에이스들은 전차를 버리고 도주하기 일쑤였습니다. 발전된 주포와 방호력을 갖추었지만 엔진 고장이 늘어났고 연료 공급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전장의 상황이 날로 독일에게 불리해지면서 킹 타이거 전차는 방어전에 우수한 구축전차 야크드 티거로 개량되어 생산됩니다. 킹 타이거는 독일의 패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세대 MBT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많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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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