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26. 07:00


현대전은 치열해진 첨단화와 더불어 정보전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이라는 격언이 말해주듯이 상대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 수뇌부도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1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해 제대로 된 병력을 보유할 수도 없었으며 전함의 배수량에 제한을 받았고 전차의 새로운 설계도 불가능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국민들은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범게르만주의를 설파한 오스트리아 출신 아돌프 히틀러는 현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제시했고 현명하기로 소문난 독일 국민들은 열광했습니다. 히틀러의 달콤한 연설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인지도는 급상승하게 됩니다.





해군에서 몸을 담고 있던 빌헬름 프란츠 카나리스(Wilhelm Franz Canaris)제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공주의자였던 카나리스는 히틀러의 반공주의에 적극적으로 동조했고 독일 방첩국인 아프베어(Abwehr) 사령관으로 임명이 됩니다.


정보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독일 수뇌부와 히틀러는 영국 첩보국 MI6와의 전면전을 예고했습니다.


2차대전 초기부터 승기를 잡아가던 독일은 파죽지세였고 강력한 육군력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를 침공하여 손쉽게 승리하였으며 영국은 혼비백산하여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국의 참전을 경계했던 히틀러는 카나리스에게 영국 본토에서 첩보전을 펼칠 것을 명령했습니다. SS 친위대 수장이며 나치당 2인자였던 하인리히 힘러는 방첩국을 지원하는 듯 제스처를 취했지만 아프베어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예의주시했습니다.


정보를 쥐고 있는 세력이 결국은 많은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을 힘러는 알고 있었으며 카나리스에게 의문이 생기면 바로 제거작업에 착수하려고 했습니다. 반공주의를 주장하는 히틀러의 생각에 동조했던 카나리스 제독은 날이갈수록 흉폭해지는 히틀러에게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수를 통해 영국 본토 잡입하여 첩보를 제공하고 있는 공작원들의 정보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정보전에서 앞선 독일은 전장에서 영국을 앞도할 수 있었습니다.





철썩 같이 독일 첩보원들의 정보를 아프베어와 카나리스는 믿고 있었지만 영국 출신을 회유하여 아프베어로 활동하는 첩보원들은 독일에서 벗어나자마자 영국 첩보기관 MI6로 향했고 스스로가 독일 스파이임을 밝혔습니다.


영국은 아프베어의 스파이를 이용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독일 스파이로 표면적으로 활동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독일에게 흘리는 MI6의 정보를 그대로 옮긴 영국 출신 첩보원들은 더블 에이전트(이중 스파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았고 흘리는 정보는 영국이 의도한 것들이었습니다. 독일이 첩보를 믿게 하기를 바랬던 MI6 뜻대로 첩보전은 흘러갔고 오히려 독일군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베어는 여전히 영국 내 첩보원들의 정보를 신뢰하였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지지 전 상세한 내용을 타전받게 됩니다. 상륙지역이 노르망디로 예상했던 독일군에게 칼레지역이 확실하다고 영국 내 첩보를 보냈고 독일 육군은 칼레로 병력을 집중합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부름을 받고 노르망디 지휘관이 되어 있던 에르빈 롬멜 장군은 칼레가 상륙지가 될 것을 전해들은 후 자택으로 향했고 노르망디는 방비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첩보전에서 앞서고 있다고 자만한 독일은 서부전선을 송두리 채 노르망디를 통해 바치는 결과를 초해하였고 중심에는 아프베이를 가장한 더블 에이전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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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