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25. 10:36


서유럽에서는 독일의 나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을 시작했지만 동유럽의 러시아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볼셰비키혁명으로 공산주의가 집권하였고 러시아 내전을 거쳐 이오시프 스탈린이 전면에 나서고 있었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동부전선을 걱정한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스탈린은 히틀러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서부전선에 집중하기 위해 스탈린과 화친하는 제스쳐를 취하기는 했지만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를 싫어했고 슬라브 민족에 대한 증오심도 컸습니다.





범게르만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히틀러에게 러시아는 반드시 점령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들어선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이르게 됩니다.


러시아 내전인 적백전쟁으로 수세에 몰린 백군은 히틀러가 벌인 독소전쟁의 곳곳에 파견이 되고 열세에 놓인 전선에서 포로로 독일군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육군 중장 출신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은 제 2집단군을 지휘하다가 레닌그라드에서 독일군 포로가 됩니다.





소련군 포로 중에는 우크라이나 출신부터 아시아계 병사까지 다양한 포로가 있었으며 악명 높은 코사크 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철썩 같이 믿었고 실권을 잡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소전쟁 초기 소련군은 전력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꽤나 긴장했던 히틀러와 육군 장성들은 한숨을 돌렸고 전장에서 항복하는 포로들로 수용소가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공산당의 지시가 없으면 제대로 대응 조차 하지 못하고 독일군에게 항복하는 무기력한 소련군은 날이갈수록 늘어갔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수용할 공간과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치당의 2인자 "하임리히 히믈러" 는 히틀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소련군 중에서 백색군이었던 의용군과 반공주의자들을 구성해서 부대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고 육군 장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포로로 구성된 전력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뒤로 하고 ROA(Russian Liberation Army, 러시아 해방군)이 조직됩니다. 범슬라브족을 말살하겠다는 히틀러의 수하 중에 슬라브족부대가 탄생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어 머릿말로는 RLA지만 러시아어 해석으로 ROA...)


ROA부대의 지휘관은 제 2집단군을 지휘하던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 





동부전선을 급파해야 한다는 히믈러의 주장과는 달리 파르티잔(Partisan, 빨치산)을 토벌하는 데 동원되었고 동구권 유고슬라비아에 지원을 나가는 등 2선에서 머물렀고 중대한 전장에서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의 우수한 장비들을 지원하지 않았고 서자 취급을 받으면서 나치의 선전 대상으로 전락한 ROA는 동부전선이 급박해진 1945년이 되어서야 전장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체코슬라바키아로 급파된 ROA는 전세가 연합국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라하의 무장친위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고 ROA는 연합군에게 항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ROA의 망명을 거부했고 미군에 항복하기 위해 비밀사절단을 보애고 브라소프와 부하들은 미 3군에 항복하게 됩니다.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던 블라소프와 ROA는 얄타회담에서 정해진대로 소련으로 넘겨지게 되고 반역죄를 판결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혹독하기로 소문난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 굴라그에 수용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리히텐슈타인의 ROA만이 아르헨티나로 보내져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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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