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17. 07:00


2차대전 독일은 상대적은 적은 보병 숫자와 화력의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기갑 전력을 앞세운 전격전으로 문제를 우회하였습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하인츠 구데리안, 히틀러의 소방수 발터 모델 원수와 같은 인재들이 가득했지만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육군을 갈망한 히틀러는 휴고 슈마이저(Hugo Schmeisser)에게 나은 총기를 요구했고 총기회사 발터사와 헤텔사는 보완을 거듭하며 돌격소총을 완성시키기로 합니다. MP(Maschinenpistole, 기관단총)으로 구분되는 버전이 새로이 출시되었고 전선에 도달했습니다.









"히틀러의 전기톱 MG42" 가 전선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병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Sturmgewehr(돌격소총)의 필요성이 요구되었습니다. 오픈 볼트 방식의 MP43은 클로우즈 볼트로 개량을 거쳤고 노리쇠까지 수정하면서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게 됩니다.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던 MP44는 최종적으로 Stg44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최초의 기관단총 MP18을 개발한 휴고 슈마이저는 최초의 돌격소총 Stg44까지 개발하면서 현대 총기계의 아버지로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


영국은 "스텐" 이라는 허접하디 허접한 기관단총을 사용하고 있었고 미국은 "M3 그리스 건"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원스코프까지 장착한 독일군의 돌격소총 Stg44는 첨단 무기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견고하지만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신뢰성이 우수한 총기였습니다.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돌격소총에 대한 기술력을 탐내게 되었고 평생동안 튀링겐 지역의 줄(Suhl)을 떠나지 않았던 휴고 슈마이저는 미국과 영국의 점령하에 형제인 한스와 함께 신문을 받았고 뒤이어 점령한 소련군에 의해 강제노역에 처해집니다.


우랄산맥에 위치하고 있던 소련 소화기 개발센터에서 7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총기 개발을 강요받았고 소련은 희대의 명작 AK-47을 개발했다고 발표합니다. 젊은 부사관인 미하일 칼리시니코프가 개발의 주역이었다고 언급했고 지금까지 AK-47은 칼라시니코프의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휴고 슈마이저의 기술력의 핵심을 차용해서 총기 장인 유진 스토너가 아말라이트 계열의 명작인 M16을 만들어냈다면 소련은 대놓고 휴고 슈마이저를 데려가 총기 개발에 참여시켜 AK-47를 개발하고 표면적으로 칼라시니코프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작고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2009년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AK-47의 개발에 휴고 슈마이저가 깊숙하게 관여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어린 부사관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AK-47의 개발자는 휴고 슈마이저에게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AK-47로 인한 비난이 쏟아졌을 때 억울하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현대사에 획을 그으며 총기 개발자로서의 최고의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던 "휴고 슈마이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기술을 모두 이전하며 강대국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1953년 고향인 줄에 돌아와 조용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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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