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4. 28. 07:00


일본은 군소세력이 하나로 통일되는 역사를 겪을 때마다 중국으로 진출을 꿈꾸었고 교두보인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벌어진 배경이기도 하며 스스로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대동아공영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선진국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군사강군으로 발전한 일본은 다시 한 번 중국에 대한 침략을 자행합니다.





중국의 북동부지역을 점령하면서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앞세웠으며 중국 내륙으로의 침입에 대한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었지만 항일이 우선이라는 의견의 합의를 보게 됩니다.


국공합작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중국 점령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선진화되고 제식화된 일본의 전력으로 중국을 정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군부의 생각은 빗나갔고 중국 내의 반일감점이 높아지면서 국제법을 근거로 일본의 중국 내 주둔이 어려워지자 유화책으로 전환합니다.





베이징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과 국민혁명군은 대치상태였으나 무력 충돌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중국 내에 일본 주둔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중국은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레치를 당했다는 것을 일본은 알고 있었고 무력시위로 압박을 했습니다.


민중들까지 항일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섣불리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영토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만주국이 건국된 이후로 생각보다 약한 중국에서 공을 세위기 위해 공명심을 가진 장교들의 의식이 팽배하게 되었고 중국 내의 상황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베이징에 주둔한 1연대 연대장 무타구치 렌야는 연일 벌어지는 무력시위 훈련을 마치고 난 뒤 점호에서 병사가 한 명 사라진 것을 보고받게 됩니다. 2시간여에 달하는 수색 후에도 병사가 나타나지 않자 중국군 지역인 노구교 건너편으로 병력을 보내 수색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했고 중국은 반발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상부에 카니치로 타시로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공명심이 앞서 부대에 비상경계령을 선포합니다. 노구교 다리를 건너 중국군과 교전을 벌어 일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고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불평등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베이징 내의 반일단체를 해산하고 반일활동을 중지할 것, 노구교사건의 책임을 국민당이 질 것, 일본군과 교전했던 중국혁명군 지휘관 쑹저위안과 고위 장교가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중국군과 중국인들은 반감이 높았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점호 중에 사라진 이등병은 화장실이 급해서 자리를 비웠고 20분이 지나서 돌아와보니 자신을 찾기 위해 수색을 벌이고 있었으며 이등병도 함께 참여하여 자신을 찾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소대장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상부에 보고하려고 했지만 이미 본국까지 상황이 확대되어 입을 닫게 되었습니다.




노구교 사건으로 유화책을 펴던 일본은 중국 파병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게 되고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은 일본군의 무력행사에 대해 계획된 도발이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일본군과 중국혁명군의 일촉즉발의 화약고에 노구교 사건이 단초가 되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인 중일전쟁이 시작됩니다.


대규모 포격과 장갑차까지 동원한 무타구치 렌야의 공명심을 위한 과욕이 불러일으킨 소동은 군수뇌부를 자극하였고 중일전쟁을 거쳐 후일 일본 패망의 단초로 작용하게 됩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이후로 태평양 전쟁에서 싱가포르 전투와 버마전선으로 이동했으며 버마 주둔 15사단 사령관 중장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버마 주둔 이후 업무시간에도 기생집에 들러 주색잡기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으며 인도 침공을 위해 벌인 임팔 작전에서 무리한 계획을 입안하여 92,000명의 부하를 아사상태로 이끌어 13,000명으로 줄였고 무능한 사령관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도미나가 교지, 스기야마 하지메와 더불어 2차대전 "삼대오물" 로 불리우며 일본의 수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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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