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4. 25. 07:00


인류는 문화와 기술적인 발전을 전쟁을 통해 발전시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를 노래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2년 이상을 지속한 적이 없었고 수많은 인력과 자원이 훼손되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우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작은 영토에 속하는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외세의 침입에 노출되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앞도적인 숫자가 승리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결과를 창조하며 신화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 낸 사건들을 주변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안시성 전투


당나라를 통일한 고종 이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은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50만 대군과 공성무기를 대동한 당나라군은 파죽지세로 고구려를 침공했고 요동성과 백암성이 함락되면서 수도 평양을 앞두고 안시성에 이르게 됩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10만의 군사로 태종 이세민의 당나라 군대와 혈전을 벌였으며 토성을 쌓아 안시성보다 높은 위치에서 기선을 제압한 전술을 뒤집으며 토성을 빼앗아 승전에 이르게 됩니다. 눈에 화살을 맞고 퇴각한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을 다시 계획하지 않았고 후대에도 절대 도전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행주대첩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을 정복하고자 조선에게 길을 내어줄 것은 명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됩니다. 평화로운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 덕에 군사들의 규모는 줄었고 준비는 미약했으며 제대로 된 편재를 갖추지도 못하였습니다.


퇴각하다가 행주산성에 이른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고양시에 위치한 토성이자 산성인 행주에서 왜관과의 접전을 치르게 됩니다. 관군 3,000과 의병 6,000이 합한 9,000명과 정비된 왜군 30,000명과의 전투는 결과가 당연했으나 왜군 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하며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명량해전


위대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과 맞선 전대미문의 승전을 거둔 해전으로 세계 3대 해전인 트라팔가르, 살라미스, 칼레 해전 이상의 해전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의 주배경이며 막바지로 치닫던 정유재란의 흐름을 뒤엎은 해전입니다.


칠천량 해전으로 일본 수군의 사기는 높아져 있었고 13척 밖에 남지 않은 조선 수군에게는 비관적인 상황이었지만 울돌목의 지리적 우위를 앞세워 치뤄진 해전은 말도 안되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133척의 일본 수군은 30척이 완파되고 3,000명이 전사하여 퇴각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베티고지 전투


경기도 연천군 일대 베티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로 대한민국 1사단 11여대 6중대 2소대 36명과 중공군 1,400명이 벌인 전투입니다. 휴전이 임박해지는 1953년 7월 15일에 벌어진 전투는 다음 날까지 지속되었고 중공군 314명이 전사하고 45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군 전사자는 24명이었으며 지휘관 김만술 소대장과 12명은 생환하였고 휴전이 되면서 배티고지는 비무장지대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아 수류탄, 철모, 야전삽으로 백병전을 치루며 이뤄낸 승리였고 당시 벌어진 금성전투와 함께 한국전 최고의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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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