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3. 23. 07:00


1900년 대 초기 미국은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고 있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로 인종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었지만 차별이 극심한 남부 뿐 아니라 북부 일부 지역에서도 흑인과 유색 인종은 백인들에게 동등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보수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군대는 더할나위 없이 인종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흑인과 유색 인종에 대한 참여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주력이 해군으로 대부분의 전력의 중심이었고 보수적인 지휘관들이 즐비했습니다.





보수적이고 국가주의적일 수 밖에 없는 군대에서 동양인으로 가장 처음 장교가 된 인물이 있었고 그는 심지어 여성이었습니다. 남성위주의 조직인 군대은 현재도 여전히 여성들을 반기지 않고 있으니 그녀가 입대하던 20세기 초에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수산, 영어 이름은 Susan Ahn Cuddy...





1915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난 안수산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3남2녀 중 장녀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거사 이후로 일본 군부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고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미국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과 신한민보를 설립하고 자금을 마련하여 상해에 위치한 임시정부로 떠나게 됩니다. 어린 나이였던 장녀 안수산에게 안창호 선생님은 "네가 대한국인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는 말을 해주었고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안수산은 동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고를 안고 있으면서도 미 해군에 입대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그녀의 도전이 무모하다고 조언했고 바램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습니다.


그녀가 미 해군에 입대하려고 했던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일본과 맞서는 것과 같을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미 해군 장교는 몇 번의 도전 끝에 성공하였고 해군 입대가 결정됩니다.





미 해군 내에서도 동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기에 종종 병사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안수산은 이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전과 같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해군 내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암호해독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장교로 복무하였고 능력을 인정받아 NSA(National Security Agency, 국가안보국)에서 발탁되어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녀가 미 해군을 제대할 때 계급은 대위였고 NSA에서는 비밀정보 분석 파트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1938년 이미 세상을 떠난 안창호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강산이 몇 번이나 지난 뒤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안창호 선생님을 기억하는 곳곳에서 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가 상해로 떠나시면서 남기신 당부를 떠올리게 됩니다.


2015년 6월 24일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100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아버지가 창설한 흥사단과 신한민보에서 적극적으로 활둉을 했으며 2016년 5월 타임지가 선정한 "이름없는 여성 영웅(Unsung women of history)"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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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