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03.21 07:00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당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게 고전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의 화친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서 소련에 대한 위협을 미연에 방지했습니다.


프랑스와 인접한 서부전선만 신경쓰면 되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고 기갑전력을 선두로 벌이는 전격전은 신출귀몰하였으며 연합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의 기갑전력은 규모가 작은 소형 전차들이었지만 진격속도와 전술의 전개는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드러내고 군비를 축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형화된 무기를 개발할 수 없었지만 연합군의 전력이 독일군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섬나라인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이 독일의 발아래 위치했고 조만간 전쟁을 끝이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1차대전과 같이 미국이 참전하기를 학수고대했지만 미국은 군수물자를 팔면서 참전을 꺼렸습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미국이 관여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고 미국 국민사이에는 반전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여론을 등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히틀러는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전쟁을 시작했고 11월에는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습니다. 소련은 핀란드를 12월이 지나기 전에 정복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주변국들은 소련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핀란드는 1월이 지날 때까지 항전하였습니다.


핀란드의 전력이 소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지만 추운 산악지대를 누비며 활약한 핀란드군과 시모 해위해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하얀사신"으로 불리웠던 시모 해위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저격에 성공한 저격수로서 소련군의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저격에 성공한 인원이 500명이 넘었고 비공식 기록에서는 800명에 육박합니다. 소련은 5배에 달하는 병력을 가지고도 핀란드를 제압하지 못했고 핀란드보다 5배에 달하는 사상자를 기록하면서 굴욕을 당했습니다. 핀란드 영토의 10%를 내주고 20%의 경제력까지 포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소련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독일은 소련의 군사력이 예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이어지는 승리로 자신감에 도취되어 있었고 소련이 우숩게 보이면서 침공을 계획하게 됩니다. 육군장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히틀러는 독단을 강행했습니다.





소련이 수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핀란드의 영하 40도의 혹독한 날씨와 지리를 꿰고있는 기동력 우수한 스키부대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채로 말입니다. 드러난 숫자만으로 전쟁을 계획하는 오판을 저지르게 되고 바르바로사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하게 됩니다.


서부전선을 완전하게 제압하지 않은 상태였고 영국이 건재했으며 동부전선까지 전장을 늘이면서 보급선은 길어졌고 군수물자의 부족과 전선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해합니다. 소련의 혹독한 겨울을 생각하지 않고 계획한 바르바로사는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1941년 6월에 시작한 독소전쟁은 히틀러의 계산대로라면 겨울이 되기 전에 끝을 냈어야 했지만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까지 지속되었고 독일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겨울전쟁에서 굴욕을 당했던 소련이지만 전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오판에 의해 스스로가 세운 독일의 나치당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2차대전을 끝맺게 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세게 반대했던 육군장성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귀기울였다면 세계의 역사는 현재의 것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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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